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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과 문화

한류의 특성, 혼종문화와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의 특성

 

 

 

한류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우연의 소산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혼종문화라는 것이다.

 

1. 설계되지 않은 성공

사회 현상으로서 한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무도 미리 계획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대박이라는 사실이다. 앞에서 ()한류의 원인으로 지적한 여러 요인들 중 어느 것도 작금과 같은 엄청난 성과를 미리 목표로 설정해 두고 치밀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이 요인들은 각자의 메커니즘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였을 뿐이며 그들 사이에 미리 설정된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각기 나름대로 한류 붐의 조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요인들이 사전에 준비된 하나의 전략적 구도 속에서 추진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류는 설계되지 않은 성공”(김정수, 2002a: 12)이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다시피 한”(이기형, 2006: 247) “행운의 안타”(박재복, 2005: 15)인 셈이다. 물론 한류의 지속적인 유지·발전을 위한 정부의 종합적 대책에 대한 요구도 많고 또한 실제로 정부 차원에서도 각종 다양한 지원을 제공했던 것도 사실이다.13)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류 현상이 널리 알려질 정도로 큰 붐을 이룬 이후의 일이다. 한류 바람이 사후적으로 정부와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지 누군가(정부든 민간부문이든)의 의도적인 계획에 따라 한류 현상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류는 우연의 소산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합류됨으로

인해 ()한류라는 엄청난 현상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 요인들 중 어느 한두 가지만 가지고는 지금과 같은 정도의 한류 열풍은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 가요의 수준이 여전히 과거 7, 80년대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결코 세계 젊은이들을 매료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90년대 들어와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제성장과 개방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한국 대중문화의 매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혹은 한국 정부가 아무리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다른 모든 상황이 무르익었다고 해도 시장개척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문화산업 기업가가 없었더라면 한류는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직간접적인 관심과 후원이 없었더라면 한류의 지속과 확산은 훨씬 더디고 어려웠을 것이다. 또 소셜미디어의 확산이 없었다면 유럽이나 미주 지역 소비자들에게 K-Pop이 소개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내적, 외적, 개인적, 그리고 정책적 요인들이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모두 겹치면서 한류라는 거대한 바람이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기술적 요인에 힘입어 신한류 돌풍이 일게 된 것이다.

 

 

2. 혼종문화

 

한국인들에게 문화적 자부심과 경제적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준 한류는 과연 한국적 문화인가?

박기수(2006: 317)는 한류에 대해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반영된 대중문화 콘텐츠라기 보다는

한국에서 생산된 대중문화 콘텐츠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생산된 문화상품이라면 물론 ‘Made in Korea’라는 표식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류의 주역들이 대부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 한류의 국적 또한 당연히 한국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연 한류를 한국의 문화라고 주저 없이 칭할 수 있을까?

 

문화적 콘텐츠의 특성 면에서 볼 때 한류는 본질적으로 혼종문화(Hybrid culture)이다(강철근,2006: 115; Shim, 2006). 대중음악 연구자 신현준은 한류가 일본문화도 한국문화도 아니고 한·일 공동문화도 아닌 성립과 기원부터 잡종적 문화라고 주장한다(이기형, 2006: 222). 사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본래 서양(특히 미국)의 대중문화가 유입되어 형성된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으면서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대중문화가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쳐왔던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여러 나라에서 유입된 외래문화가 한국적 정서로 걸러져서 변용된 혼종문화인 것이다.

 

()한류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댄스뮤직은 혼종문화로서의 한류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중국에서 최초로 한류 붐을 일으켰던 아이돌 그룹 H.O.T는 일본의 아이돌 보이밴드

스타일의 외모를 가지고 미국식 힙합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랫말은 대개 전형적인 한국식 사랑가였다. H.O.T를 선보였던 SM 엔터테인먼트는 실제로 세계 각국 수백여 명의 작곡가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곡들을 제공받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유럽 작곡가의 곡에 한국 작사가가 가사를 붙이고 미국이나 일본의 안무가가 댄스동작을 구상하면 한국식 훈련 시스템을 거쳐 매력적인 글로벌 문화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이처럼 K-Pop은 서양음악과 동양적 요소를 잘 융합시켰기에 다양하고 독특한 을 내는 것으로 평가된다(삼성경제연구소, 2011: 4).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이자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쉬리는 분단이라는 한반도만의 상황을 한국적 정서로 담아내었으나 그 형식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물이었다. 이처럼 한류의 문화적 본질은 동서양의 여러 대중문화들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퓨전 문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종문화라는 특성이야말로 한류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사랑 받고 있는 글로벌 경쟁력의 근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