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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환경

다음 책은 국제 무역 정치

 

 

이제껏 2006년 이후 매년 1권, 현재까지 12권째 책을 냈다. 다음 13번 째 책의 주제로는 '국제 정치 무역'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하려고 한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늘 무역은 국제 관계를 풀려고 애썼고, 정치는 풀린 관계를 꼬아가는 역할을 했다. 그것도 198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국제 관계를 풀어보려고 한다.

 

중국 경제개방, 독일 통일, 소련 붕괴로 시작하는 국제 외교 관계 변화에는 늘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있었다. 동유럽 국가들에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외교부나 안기부보다 코트라였고, 나는 홍보부에서 있으면서 공산권 붕괴에 따른 시대의 흐름을 옆에서 보았다. 그러니까 내 사회 생활의 시작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함께 했다.

홍보부 기자실은 중국, 동유럽, 소련의 붕괴에 따른 현지 사정의 변화와 속사정, 각국 정부 간의 은밀한 대결과 협력,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응책을 취재하려는 기자들로 붐볐다. 그런데 공산권 국가들과의 막힌 통로를 무역하는 사람들이 길을 뚫어놓으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막곤 했다. 그 이후 내 사업을 하면서 정치외교에 앞서 먼저 무역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나 또한 정치가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늘 온 몸으로 겪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번 문재인대통령의 중국방문도 그렇다. 중국의 사드보복 이전까지는 한국과 중국은 별 문제없었다. 너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중국은 북한 편을 들자, 남한은 자구책으로 사드를 갑자기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남한의 안보를 위하여 단 한 번도 도와준 적은 물론이고, 늘 방해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사드보복을 해왔다. 그 보복 수단은 정치적으로 외교를 단절하거나, 군사위협을 가한다거나, 외교관을 불러 항의하는 공식적인 수단이 아니었다.

 

한국의 가수와 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또는 영화로 중국에 진출하는 것을 하루아침에 막아버렸던 '한한령', 일본과 정치문제로 중국인의 일본 관광을 억제하자 물밀 듯이 한국으로 들어오던 중국인 관광객을 일언반구도 없이 금지해버린 일, 롯데의 매장들을 합법을 가장한 각종 막무가내식 규제로 문 닫게 하고 이제는 매각조차도 방해하는 대 롯데 그룹에 대한 보복, 삼성SDI와 LG화학 현지 공장의 자동차용 배터리에 대한 차별적 조치 그리고 화장품등 소비재위주 제품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 쌓기 등 어느 하나 한중FTA를 어기지 않은 조치가 아닌 것이 없다. 정치가 막히자 무역도 막았다.

 

 

외교로 무역을 풀기 위한 노력

문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여 사드보복으로 막혔던 '한중 무역관계'를 뚫으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코트라(KOTRA)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무역관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였다.

12월 14일 중국 베이징 국가회의중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과 연계해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을 개최하였다. 한국기업 174개사, 중국기업 751개사가 참가한 매우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행사는 한국과 중국 기업이 서로의 수출입 상품의 시장성을 검토하는 비즈니스 상담회, 한국의 소비재중 중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우수 소비재 전시(쇼케이스), 송혜교 등 한류 스타와의 동반 방문,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의 기업 사회공헌 홍보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몄다.

 

이 행사의 개막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의 대중국 진출 노력을 격려하였다. 이러한 문대통령의 중국 방문 성과에 대하여 17일 윤영찬 국민소통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의와 신뢰를 구축하고 한·중 관계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스스로 평가하였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가진 윤 국민소통수석은 양국 정상회담에 대해 “한·중 간 교류협력 복원·발전을 위한 본격적인 신호탄”이라고 정의하며 “양국 간 교류협력의 회복은 물론, 새로운 25년을 향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미래 협력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강조했다.

 

 

꼬인 대 중국 무역 풀려질까?

문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정치로 꼬인 무역관계를 풀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다면 무역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전처럼 다시 중국으로 몰려갈 수 있을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양 진영으로 첨예하고 살벌하게 나뉘어져 있던 양극화시대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진출했던 기업들이 있다. ㈜대우가 구 소련 권에 자동차를 수출하고, 폴란드에 자동차 공장을 지었다. 심지어는 외교관계가 전혀 없던 '중공 (수교이전에는 중국을 그렇게 불렀다)'에 진출하여 한국 제품을 팔던 기업들도 많았다.

그런 해외시장 개척정신을 가졌던 기업인들은 위험 속에서 기회를 보았고, 실제로 다수의 기업들이 성공의 팡파르를 불었다. 남들이 보기에 기업하기에 공산권 정부의 관료적 시스템이 위험해 보이지만, 그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우 경직된 것 같은 공산권 국가였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자율권과 소유권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 기업들은 중국 정부도 기업들에게 자율권과 소유권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쉽게 마음 놓지 못할 나라임을 알았다. 풀리기는 해도 이전처럼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 중국 무역을 풀기 위한 노력으로 인해 대일본 정치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인들과 공감을 위하여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싸웠다'는 역사적 동질성을 강조하여 대일본과의 적대감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국제 정치가 복잡해져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중일 3국의 경제구조도 닮아가며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해야 하는 관계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는 국가의 생존과 부를 위한 일이고, 무역은 개별 기업과 국민이 잘 살기 위한 노력의 총합이다. 어떻게 보면 국제 정치와 국제 무역은 같은 길을 가고 있어야 하지만, 충돌하는 때가 많다. 정치인의 세상관점과 무역인의 세상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를 무역인의 입장에서 보는 외교관이나 정치인이 나와야 할 때이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